아칸 아이누협회 회장, 일반사단법인 아칸 아이누 컨서른 이사장, 공익사단법인 홋카이도 아이누협회 이사
히로노 히로시
1964년, 쿠시로 시 하루토리에서 히로노 소우시와 토요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아이누 장로들의 구전을 집대성해 많은 문헌을 남긴 야마모토 타스케. 2019년, 아이누의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일반사단법인 아칸 아이누 컨서른」을 설립. 해외에서의 사례를 참고하여, 관광과 문화계승 및 아이누의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
아칸 호에서 미지의 세계로
「『인보관』, 후에 생활관이라 불리는 건물이 있었지. 그곳에서 할아버지나 어머니께서 노래나 무용의 후진양성을 하고 있었단다.」쿠시로 시에서 태어난 히로시는, 어릴 때부터 아이누의 문화를 접하며 자라왔다. 히로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인 야마모토 타스케 에카시※1를 포함한 일가족이 외가가 있는 아칸 호에 이주했다.
당시의 아칸 호는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으며, 민예품점이 모여있는「아칸 호 아이누코탄」의 모든 가게가 손님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유소년기를 지낸 코탄의 활기넘치는 거리를, 히로시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중학교 졸업 후에는 건축을 배우기 위해 비바이 시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후, 신토쿠 마을의 회사에 입사하나, 22세 때 큰 결심을 하고 도쿄로 상경했다.
아이누 문화와의 재회
도쿄에 상경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히로시는 와세다에 있던「레라 치세※2」라는 아이누 요리점에서 열리는「아이누 문화 계승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계승회에는 도쿄에 살고있던 아이누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그들과의 교류를 계기로, 히로시는 틈만 나면 홋카이도로 돌아와 아이누의 전승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아칸 호나 쿠시로, 시라누카에서 무용을 배우거나 장로의 이야기를 듣는 등, 본격적으로 아이누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통을 몰랐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가만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히로시의 가슴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찾아온 고난와 동포들의 협력
수도 없이 레라 치세를 찾아다니던 히로시는 생각지도 못한 의뢰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레라 치세의 이전 공사」를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히로시는 자신의 건축기술을 살려서 이전 장소 물색부터 자금 조달, 공사판 작업까지 쉴 틈 없이 활약했다.
이 일을 계기로, 히로시는 레라 치세의 영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전 직후에는 익숙치 않은 아이누 요리에 많은 손님들이 몰렸지만, 얼마 안 있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기게 되었다. 히로시는 이 때 강연, 자수, 목조, 카무이노미※3, 음악 등 아이누 문화의 워크샵을 개최하여 경영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문화체험에 흥미를 느낀 손님들이 대거 가게를 찾아 왔던 것이다.
도쿄에 살고있는 아이누의 동포들도 기꺼이 체험 강사로서 힘을 빌려 주었다. 「동포가 분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칸 호의 아이누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었다. 히로시는 그 때의 감사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활동 영역을 늘려, 더 깊게 아이누 문화를 배우다
레라 치세의 경영이 궤도에 올라섰을 즈음, 히로시는 아이누와 오키나와의 전통의식을 동시에 개최하는 「차랑케 축제」에 중심 멤버로서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전에 응모했었던 아이누 문화재단 연구사업이 채택되어, 「야마모토 타스케가 전승한 아이누 문화를 비롯한 홋카이도 동부 아이누 문화연구」라는 테마로 연구를 시작했다.
레라 치세를 경영하며 아칸 호에도 다녔다. 야마모토 타스케 에카시의 차남이자 아이누 문화전승자인 야마모토 후미토시 숙부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며 숲과 자연, 그리고 생활에 관련된 많은 전설이나 일화를 들었다. 히로시는「멸종됐다고 알려진 에조늑대(홋카이도 고유종)는, 아직도 깊은 숲 속에 서식하고 있다」는 숙부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후에 히로시가 집필한 동화「세푸와 늑대의 약속」에서는, 개척자의 이주 때문에 멸종된 에조늑대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누의 소년 세푸가 등장한다. 숙부와 지낸 날들은, 후에 히로시가 아칸 호에서 아이누 문화의 전승을 담당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도쿄의 아이누 커뮤니티가 확립될 즈음, 히로시는 지인에게 레라 치세를 양도하고 가족과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아칸 호로 돌아왔다.
아이누의 자립을 향해
아칸 호에 돌아온 히로시는 활동 영역을 해외까지 넓혔다. 외국의 선주민족과의 교류 및 그들이 현지에서 생활터전을 유지해 온 방식을 보고 배우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뉴질랜드나 미국, 대만에서는 관광이나 예술의 분야에서 민족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었으며, 그 수익금으로 선주민족의 생활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었다.
히로시는 이러한 사례를 아이누의 문화에도 적용할 수 없을까 고안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아이누의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일반사단법인 아칸 아이누 컨서른」을 설립했다. 아칸 호 아이누코탄은 히로시를 중심으로, 「온네치세※4」라고 불리는 전통 양식의 극장을 개수 공사하여 아이누 예술의 전당으로 개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전통적인 도구의 전시 뿐만 아니라, 아칸 호에 살고있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전시 예정이다.
또한, 아이누 문화를 담당하는 가이드를 더욱 양성하여, 일반재단법인 마에다입포원 재단※5이 소유하고 있는「빛의 숲」이나「호북의 숲」의 투어도 실현할 예정이다.
선주민족의 가이드가 일본에서도 뿌리를 내리기를 기원하며.
인터뷰 동영상
- 에카시 (Ekasi) 조부. 할아버지. 장로.
- 레라 치세 (Rera Cise) 「바람의 집」이라는 뜻
- 카무이노미 (Kamuy-nomi) 아이누의 신에게 올리는 의식. 기도하다, 제사하다, 축사의 뜻
- 온네치세 (Onne Cise) 「거대한 집」이라는 뜻
- 일반재단법인 마에다입포원 재단이란, 1906년에 정부가 매각한 마에다 가문의 광대한 사유지「아칸 마에다입포원」의 넓은 대자연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마에다 미츠코가 중심이 되어 1983년 4월에 설립한 조직이다. 주로, 아칸 호 주변의 약 3600만m2의 아름다운 산림의 유지, 자연보호에 관한 학술조사연구, 보급계발활동, 인재육성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