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작가
타키구치 켄고
목조 작가인 타키구치 마사미츠와 아이누 민족인 유리코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아칸 호 아이누코탄에 있는「이친게의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더 높은 경지로」 오르기 위해 꾸준히 목조를 하고 있으며, 어학력을 살려 영어 가이드도 하고 있다.
아칸 호에서 지낸 어린 시절
켄고는 아칸 호 3대 거장 중 한 명인 목조 작가 마사미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랐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은 민예품점「이친게의 가게」의 한 구석에는, 켄고가 초등학생 때 만들었던 목조 작품이 아직도 장식되어 있다. 나무 막대에 얼굴을 새긴 것이 다인 누가봐도 어린이의 작품이지만, 어딘가 현재의 켄고의 작품과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의 켄고에게 있어 목조는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에 오히려 깊이 빠져들기 어려웠다고 한다.
창작하는 즐거움과 자신의 뿌리에 눈을 뜨다
켄고가 조형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이다. 호주에서 유학하던 중 점토나 우드카빙을 접하였고, 진심으로 즐겁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너무나도 즐겁던 창작의 시간은, 켄고의 작가로서의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켄고가 아이누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유학을 마치고 홋카이도로 돌아온 후이다. 타키카와 시에서 아이누의 의식인「카무이노미※1」를 처음 봤을 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감동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라고 회상하는 이 체험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던 문화의 훌륭함을 깨닫고, 자신에게도 아이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목조를 통해서 아버지와 마주하다
홋카이도로 돌아온 후에는 10년간 아버지 밑에서 목조를 하며 일을 도운 후, 아칸 호를 떠나서 낙농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낙농업을 하면서도 목조는 그만두지 않았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밤 늦게까지 조각을 하는 날들을 보내던 것이다. 어느 날, 그런 생활을 하던 켄고에게 아버지 마사미츠가 가족과 함께 찾아왔다.
방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던 목고 작품을 보고, 마사미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마사미츠는 켄고의 작품을 가져와 아칸 호텔의 관계자에게 소개하였고, 켄고는 조각의 실력을 인정받아 다시 아칸 호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목조 일을 시작하게 된 켄고였지만, 아버지로부터는 도구의 손질법과「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라!」라는 말 외의 지도는 없었다고 한다. 마사미츠에게 있어 자식에게 내리는 참된 교육이란, 말로 설명하기보다「몸과 마음을 쏟아 나무와 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직접 말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마사미츠의 자세와 마음가짐은 켄고에게 틀림없이 전달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켄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앉아있으면, 손이 알아서 움직입니다.」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게에서, 켄고는 오늘도 묵묵하게 나무를 조각하고 있다.
아칸 호의 매력을 전하는 가이드로
켄고는 새로운 생활도 시작했다. 대형 선물용품 전문점과의 신상품 개발, 목조를 비롯한 아이누 문화를 전하는 가이드업 등의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켄고는 주어진 모든 일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것은 바로「태어나고 자라난 이 곳을 소중히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도 비롯된 것이다. 아버지와 생활하고 인생의 기초를 갈고 닦은 이 아칸 호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켄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마음에 울려퍼진 아이누 문화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라는 소망이 있다.
「아이누에 대해 알고나서, 따뜻한 기분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켄고의 깊고 맑은 눈동자 속에는, 사람들이 서로 웃고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그러한 평화로운 풍경이 보이는 듯 했다.
인터뷰 동영상
- 카무이노미 (Kamuy-nomi) 아이누의 신에게 올리는 의식. 기도하다, 제사하다, 축사의 뜻